우리 나라 화폐 발달사 1탄 (~고려시대)

 

우리 나라 화폐 발달사 1탄 (~고려시대)

  우리 나라 화폐의 발달사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고대의 화폐는 어떠했는지 정리하고 고려 시대의 화폐는 어떠했는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고대의 화폐

  우리 나라 정부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지폐 도안을 바꾸었습니다. 선진국은 6~7년에 한 번씩 지폐 도안을 바꿔 위폐 유통을 막고 있는데, 우리 나라 지폐는 1983년에 마지막으로 도안이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아 상대적으로 위조하기가 쉽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돈의 역사와 위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화폐는 일반적으로 물품화폐 → 금속화폐 → 명목화폐(지폐와 주화 중심) → 예금화폐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최근에는 전자화폐까지 등장해서 잘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화폐도 다른 나라처럼 경제 생활의 발전 정도나 인접 국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발달했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한치윤이 단군조선부터 고려 시대까지 서술한 역사서인 <해동역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최초의 화폐는 기원전 957년 고조선 때 철로 만든 자모전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09년엔 삼한 중 마한에서 동전이 최초로 주조되었으며, 진한에서는 철전, 동옥저에서는 문자가 새겨지지 않은 금,은 무문전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삼국 시대까지는 주화보다 쌀과 베 등 물품화폐가 널리 쓰였답니다. 이 시기에 화폐 제도가 앞섰던 중국에서 각종 주화가 유입됐으나, 주로 중국과 무역할 때만 쓰였습니다. 신라에서는 금, 은을 돈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려 시대 이전까지의 화폐는 발견되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화폐

  고려 시대로 넘어오면서 송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지자 돈의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성종 15년인 996년에 '건원중보 배 동국철전'이 주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불편하게 여겨 유통이 잘 안 되고 물물교환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 뒤 승려 의천의 건의로 숙종 2년인 1097년에 주전관을 두어 화폐 주조업무를 맡게 했고, 문자가 새겨진 유문전(동전)을 만들어 유통을 권장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동전이 바로 우리 나라 최초의 엽전이 해동통보입니다. 의천은 왕에게 동전을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면서 그 동전의 모양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난 것을 지칭하여, '둥근 것은 하늘이고 모난 것은 땅이니, 하늘이 만물을 덮고 땅이 그 만물을 지탱하여 없어지기 않게 함.'이라고 전했습니다. 앞서 1101년에는 한반도의 모양을 본뜬 은병(은화)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은병은 쌀 16~30석에 해당하는 고액 화폐로, 해동통보는 소액 화폐로 사용되며 화폐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충렬왕 13년인 1287년부터는 은병의 위조를 막기 위해 쇄은(순 은괴)을 화폐로 쓰기 시작했는데, 쌀 다섯 가마 정도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공양왕 3년인 1391년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지폐인 저화가 나왔는데, 그 형태는 닥종이 표면에 화폐 가치만 표시한 것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저화 1장의 교환 가치는 쌀 한 되, 40장에는 베 한 필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화폐 경제가 성숙하지 못해 화폐보다는 쌀과 베 등이 주요 교환수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