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화폐 발달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조선 시대의 화폐 발달 내용을 정리하고 해방 이후 한국은행의 화폐를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화폐의 유통
조선 시대 건국 초기에는 고려의 잔류 화폐인 쇄은과 은병 등이 유통되었으나, 여전히 쌀과 베 등 물품화폐가 일반적인 교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화폐의 필요성이 커지자 태종 1년인 1401년, 고려 시대의 저화를 다시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저화의 가치가 떨어져 그 기능을 못하자 세종 5년인 1423년에 조선 시대 최초의 주조 화폐인 조선통보(동전)를 발행했습니다. 2년 뒤에는 저화를 없애고 동전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파병된 명나라 군대가 들여와 사용한 은화가 활발하게 유통되자 화폐 주조 논의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인조 11년인 1633년에 상평창을 설치해 동전인 상평통보를 만들었습니다. 이 상평통보는 우리 나라 화폐 사상 전국적으로 가자 오래 유통된 엽전으로 300여 종에 이르며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쓰였습니다. 조정에서는 상평통보의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현물로만 내던 조세를 화폐로 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들어 재정이 어려워지자 조정에서 화폐를 마구 찍어냈는데 당백전과 당오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백전은 1866년(고정 3년)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등에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 강제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돈은 실질가치가 명목가치의 20분의 1도 안 되어 물가 폭등을 불렀고, 결국 3년 만에 폐지됐습니다. 1883년에는 조정에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1전이 상평통보 5문에 해당하는 당오전을 제조했지만, 역시 실질가치가 상평통보의 2배에 지나지 않아 화폐제도의 혼란을 부채질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화폐 단위는 일관=십랑=백전=일천문의 십진법을 사용했는데, 엽전(상평통보) 한 닢은 일문이었으며, 양을 기본 단위로 했습니다.
조선 시대 말의 화폐
고종 31년인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문란해진 화폐제도를 통일하기 위해 우리 나라 최초로 은본위제도를 도입하는 신식 화폐 발행 장정 조례를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본위화폐인 은화보다는 이익이 큰 백동화를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조례에서 외국 돈의 유통도 인정했기 때문에 일본 화폐까지 대량 유입돼 경제가 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1905년에는 금본위제도를 확립하고, 금화(이삽환, 신환, 오환)와 은화(반환, 이십전, 십전), 백동화(오전), 동화(일전, 반전) 제조를 일본에 의뢰했습니다. 이 무렵 백동화를 회수하기 시작했으며, 1907년에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결국 일제 시대에는 일본이 발행한 주화만 우리 나라의 화폐로 인정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은행권 화폐
1945년 광복 이후 우리 나라에서는 주화 3개 화종, 지폐 13개 권종을 일본, 미국, 영국에서 제조하여 신규로 발행하였습니다. 먼저 6.25전쟁 발발로 현금부족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1950년 7월에는 1,000원권과 100원권을 급히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제조하여 발행하였습니다. 이 지폐는 최초의 한국은행권으로서 그 이전에 일본에서 제조된 조선은행권과는 달리 제조기관이 표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후 우리 나라의 화폐는 한국은행권이 발행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에는 전자화폐까지 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