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역사 속에서 배우는 설탕 재료와 설탕 개발국가 그리고 노예들의 삶

 

설탕의 역사

  설탕의 역사 속에서 달콤함에 가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설탕의 만드는 재료와 개발을 한 국가에 대해서 알아보고 설탕 속에 녹아 있는 노예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설탕을 만들어 내는 사탕수수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벼과 다년초로서 인도, 쿠바,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등 연평균 기온이 20ºC 이상인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재배되는 작물입니다. 이 사탕수수의 줄기에는 10~20%의 당분이 들어 있습니다. 설탕을 처음 제조한 곳은 인도지만 사탕수수가 처음 재배된 곳은 태평양 남서부의 뉴기니 섬입니다. 뉴기니 섬의 사탕수수 경작은 기원전 8000년 경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탕수수는 곧 뉴기니 섬 바로 동쪽에 자리잡은 솔로몬 제도로, 다시 동남쪽의 뉴헤브리디즈, 그리고 뉴칼레도니아로 퍼져 나갔습니다. 기원전 6000년 경에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서, 마침내 설탕 생산의 원조국인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설탕을 만든 인도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인도에서는 설탕을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327년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침략했을 때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사령관인 네아르쿠스 장군은 꿀벌의 도움 없이도 갈대의 줄기에서 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탕수수를 가리켜 '꿀벌 없이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불렀습니다. 기원전 320년에 인도를 다녀온 그리스 인 메가스테네스는 설탕을 '돌꿀(stone honey)'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돌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때 이미 액체 상태의 사탕수수 즙이 아닌 결정화된 고체 상태의 설탕이 생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탕수수 즙을 끓이고 햇볕에 말려서 만든 이 덩어리는 요즘처럼 고도의 기술로 정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단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중국, 아랍, 유럽을 거쳐 아메리카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설탕과 맞바꾼 노예들

  설탕의 수요가 늘자 아메리카에서는 본격적으로 설탕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설탕을 제작할 수 있는 노동력도 필요했습니다. 아메리카에서는 한동안 유럽 본토의 정치범들이나 흉악범들을 노예로 이용해 노동력 부족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점점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노동력의 또 다른 공급원으로 찾은 곳이 바로 아프리카였습니다. 유럽 인들은 옷감이나 철기구 등을 배에 싣고 서아프리카로 가서 금이나 노예들과 교환하였습니다. 아메리카에서 이 노예들은 다시 설탕과 럼으로 바뀌었습니다. 럼은 사탕수수라는 천연의 당분에서 제조를 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사탕수수가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사탕수수 밭에서 일을 시켜 럼을 만들고, 이 럼은 다시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몸값으로 지불되는 경제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설탕의 '흰 화물'이라고 불렸고, 상품으로 전략한 노예는 '검은 화물'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서양은 흰 화물과 검은 화물을 가득 실은 배들로 분주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설탕의 달콤한 속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