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비단길이라 불리는 무역로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비단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생겼는지 알아보고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비단길이란?
비단길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로서, 독일의 지리학자인 리히트호펜이 '자이덴슈트라센'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그 시초예요. 자이덴슈트라센은 독일어로 비단길을 뜻하며, 이를 영어로 하면 말 그대로 '실크로드(Silk Road)'가 되는 것이지요. 비단길이란 이름은 이 길을 통해 고대 중국의 특산인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비단길은 중국의 비단이 중앙아시아와 이란, 메소포타미아의 오아시스 도시를 거쳐 로마에 운반된 대상로였습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인도로부터 들여온 기술로 직접 비단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비단이 사용되었다는 기록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은 페르시아 인이 독점하고 있던 비단 무역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는 설로 보아, 이 길이 옛날부터 열려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비단길은 서방의 여러 나라와 북방아시아의 유목민이 상용해 온 모피, 전(펠트), 융단 등 여러 모직물류가 중국으로 운반된 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비단길은 언제부터 있었나?
중국과 서방의 교역로는 역사서에 정식으로 기록되기 이전부터 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방과 공식적으로 교통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무제의 명령으로 장건이 중앙아시아에 파견된 후부터입니다. 그의 여행을 계기로 '서역'이라는 중앙아시아나 서방 각지와 국교가 열리게 되었고, 상인이 중국을 방문하여 진귀한 물품과 문물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건이 비단길을 연 사람으로 기록된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비단길의 역할
비단길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비단길은 동서를 잇는 무역로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특산인 비단이, 서쪽에서는 옥이나 보석, 유리제품 등이 이 길을 거쳐 운반되었습니다. 또 사자와 포도, 석류, 호두, 완두, 참깨, 오이 등의 식물류, 비파, 공후 등의 악기, 음악과 무용, 요술, 곡예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산물과 풍속이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또한 인도의 불교, 이란의 조로아스터 교와 마니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도 전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철제품을 만드는 기술과 양잠, 제지법과 화법을 서방에 전했습니다. 이처럼 비단길은 상업로로서뿐 아니라 동서 문화의 전달로로서도 큰 의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서남아시아 문화권을 연결했던 이 길은 몽골 제국이 이 두 문화권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자 자연히 그 역사적 의의를 잃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