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청해진을 세워 무역을 도왔던 장보고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어떤 꿈이었는지 살펴보고 장보고의 소망이 무엇이었고 그 소망이 왜 사라지고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장보고의 인생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장보고의 소망
장보고가 살았던 당시 신라에는 골품제라고 하는 강력한 신분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신분을 나누어 집의 크기나 의복의 종류까지 엄격히 구분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장보고는 신분 상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반란을 통해 왕이 된 민애왕을 제거하고 진골 귀족이었던 김우징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김우징이 바로 신라의 제45대 신무왕입니다. 신무왕은 큰 공을 세운 장보고를 '김의군사'로 삼고, 식읍 2천 호를 내려 주었습니다. 청해진 주변을 식읍으로 받은 장보고는 대단한 세력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식읍을 내린 것은 장보고의 공을 치하하는 형식적인 것이었을 뿐, 장보고의 신분이 상승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골품제는 여전히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보고는 그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던 신무왕의 약속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딸이 왕비가 되면 장보고는 왕의 장인이 되는 것이므로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라진 희망
그런데 신무왕은 왕위에 오른 지 여섯 달 만에 등창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위는 신무왕의 아들이 이어받았습니다. 그가 바로 문성왕입니다. 얼마 후, 문성왕은 아버지가 장보고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하들을 불러모아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한결같이 장보고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를 했습니다. 장보고의 세력이 더 커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결국 문성왕은 신하들의 뜻에 따라 귀족 가문의 딸 박씨를 왕비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성왕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장보고는 해상 무역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당나라와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신하들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궁리 끝에 장보고를 모함하여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고 장보고가 반란을 준비한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청해진에 있는 장보고도 얼마 후 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신의를 저버린 문성왕과 신하들에게 화가 난 장보고는 조정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청해진 주변을 이끌어 나가기도 결심했습니다.
비참한 최후
장보고가 더 이상 문성왕의 명령을 듣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금세 조정에까지 알려졌습니다. 왕과 신하들은 이 문제를 놓고 의논을 하였으나 좋은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장보고의 군사력이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이 6두품으로 신분을 올려 준다면 자신이 장보고를 없애겠다고 나섰습니다. 대신들은 염장에게 잘 훈련된 군사 50명을 주어 당장 청해진으로 떠나도록 했습니다. 염장은 군사들을 패잔병으로 꾸미고 초라한 모습으로 장보고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모습을 본 장보고는 염장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염장은 조용히 장보고와 이야기를 나누며 조정을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장보고 곁에서 일하고 싶다고 간청했습니다. 장보고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긴장을 풀고 염장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염장은 장보고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 장보고를 찔렀습니다. 장보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신라 앞바다를 누비며 해적들을 몰아 내고 백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장보고는 이렇듯 허망한 죽음을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