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많은 무역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나라 중에 고려는 송나라와 국교를 맺고 민간 무역과 조공 무역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문화적 영향까지 받았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친선 관계를 맺다
고려와 송나라가 처음 국교를 맺은 것은 고려 초기의 일입니다. 고려가 먼저 송나라로 시신을 파견한 것입니다. 이후로 두 나라는 오랫동안 친선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러한 친선 관계의 이면에는 두 나라가 제각기 자기네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편을 이용하고자 하는 뜻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송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문치주의를 채택한 결과 국방력이 극히 약화되어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송나라로서는 고려를 통해 거란과 여진의 압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입장은 송나라와는 조금 달랐어요. 물론 고려도 송나라와 친선외교를 폄으로써 거란이나 여진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송나라의 선진 문화를 수입하려는 목적이 더 컸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려는 송나라와 서로 다른 입장이었기 때문에 송나라가 거란이나 여진과 영토 분쟁에 휘말리면 그때 그때 정황에 따라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습니다.
고려와 송나라의 교역 내용
고려와 송나라의 무역은 크게 조공 무역과 민간 무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조공 무역으로 주고받았던 품목은 30가지가 넘었으며, 그 양도 막대하였습니다. 민간 무역은 공적인 조공 무역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송나라의 상인이 고려에 들어온 것은 고려 현종 3년부터 충렬왕 4년까지 약 120여 회에 달하였고, 그 인원도 약 5천 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송나라와의 민간 무역은 특히 문종 때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고려에서 송나라에 수출한 것은 금이나 금으로 만든 세공품, 인삼, 나전칠기, 종이 , 부채, 화문석 등이었습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것은 옥, 차, 향료, 약재, 서적, 악기, 상아 등입니다. 교류 품목 가운데 고려의 종이는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송의 수도나 항구는 물론 장강 유역 안쪽까지 널리 유통되었습니다.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는 국제 정세에 따라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지만 우호적인 관계는 ㄴ계속 유지되었습니다. 또한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한 문물의 교류도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송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고려 문화
고려는 송나라와의 교류에 있어서 송나라의 선진 문화의 수입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었던 만큼, 송나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목판 인쇄나 고려청자의 발달에 송나라의 문화는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고려청자는 순청자와 상감청자로 나뉘며, 이 중 상감청자는 고려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청자를 생산해 내는 도요지는 초기에 중국 남부의 도요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려의 음악 역시 송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고려의 음악은 향악, 당악, 아악 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당악은 중국의 음악이며 아악은 종묘의 제례 등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송나라의 대성악이 전해져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 고유의 음악은 향악을 제외하면 거의 송나라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는 송나라의 정치적인 목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송나라의 문물을 활발하게 수입한 고려에게 유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