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은 로마의 교역이 쇠퇴하면서 은행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수도원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식으로 재정을 충당하였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수도원은 어떻게 생겼을까?
수도원 생활은 먼저 동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세기 말 성 안토니는 북부 이집트 사막에서 은둔생활을 하였고 그의 추종자들은 주변에 집을 지어 함께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집트의 파코미우스는 사막에서의 은둔생활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일정한 계율을 정하고 한 건물에서 금욕적인 공동생활을 시작 하였는데, 여기서 수도원 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방에서의 수도원 제도의 확립자로는 보통 4세기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 인 교부 성바질을 꼽고 있습니다. 그는 노동과 자선, 공동생활을 토대로 한 수도원의 계율을 정하였고, 공동생활을 토대로 한 수도원의 계율을 정하였고 그 계율은 비잔틴제국 내 수도원의 표준적인 계율이 되었습니다.
중세 수도원의 역할은?
이후 수도원은 중세의 정신생활이나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수도원은 중세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었을 때 이를 정화하고 개혁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도한 중세 초기의 문화적 암흑기에 희미하게나마 문화의 등불을 유지하고, 그 결과 중세 후반기에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것도 수도원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초기의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트 교의 교세는 커 나갔으며, 4세기에는 크리스트 교로의 집단적인 개종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이렇게 교세가 커지자 교회는 큰 재산의 소유자가 되었고, 이에 따라 세속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경건하고 열성적인 신자나 성직자들은 이러한 교회의 세속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초기 교회의 이상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생겼는데, 이것이 수도원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낳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재정을 충당했을까요?
그렇다면 수도원 생활은 어떤 방법으로 유지되었을까요? 농사를 짓거나 땅을 빌려주는 것이 수도원의 재정을 확보하는 주요한 방법이었습니다. 또는 금을 맡았다가 빌려주어 이자를 받아 챙기는 형식으로 수입을 늘렸습니다. 바로 은행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도주 같은 술을 숙성시켜 판매하거나 책을 만들어 파는 것도 수도원의 주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습니다. 원래 수도원은 세속과 동떨어져 신만을 위한 삶은 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생존할 만큼의 농산물을 생산할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초기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노동력으로 먹고살았습니다. 당시의 수도사들은 밀, 채소, 과일 등 생존에 필요한 농산물을 경작하고 돼지, 닭, 소 등을 기르면서 생활했습니다. 즉 수도사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초기 수도회의 생활방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