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남편으로 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힘

 

영국을 남편으로 둔 엘리자베스 1세 여와의 힘

  파산 직전에 국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국과 결혼했다고 선포한 이야기와 무적함대를 무찌른 여왕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파산 직전에 국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는 1558년 메리 1세가 죽자 25세의 나이에 영국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뒤쳐진 채 혼란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와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고, 에스파냐 및 프랑스와의 대립도 끝나지 않았으며, 동맹을 맺을 만한 상대조차 없을 만큼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은 막대한 빚에 시달린 나머지 국고가 바닥을 드러냈고,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신,구교 간의 종교 대립으로 사회 혼란은 극에 달했습니다. 한마디로 영국은 파산 직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반세기 후인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45년간의 치세를 마치고 죽었을 때,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계 역사에 남을 위대한 제국으로 탈바꿈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파산 직전의 나라에서 위대한 제국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모두 엘리자베스 1세의 힘이었습니다.


나의 남편은 영국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즉위 후 자신의 어머니를 내쫓은 아버지 헨리 8세와 자신에게 시련을 주었던 이복 언니인 메리 1세에 대한 보복 대신 자신의 이미지 변신에 힘썼습니다. 그녀는 버림받은 사생아의 이미지에서 영국과 결혼한 성스러운 처녀 여왕의 이미지로 자신을 바꿔 놓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대관식 때 끼었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들고서 선언했습니다. "나는 영국을 남편으로 두었다." 군림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이전의 왕들과 달리, 엘리제베스 1세는 국가와 국민들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 후 그녀는 평생 동안 결혼을 피하고 처녀 여왕으로 머물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국의 장례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영국인과 결혼할 경우 또 다른 정치적 파벌을 형성하여 나라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할 경우에는 그 혼인동맹 관계에 따라 또 다른 나라와의 교류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결혼을 피했던 것입니다.


무적함대를 무찌른 여왕의 힘

  1588년 영국은 당시 최강의 힘을 가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와 일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모두 무적함대의 위용에 겁을 먹고 있을 때, 엘리자베스 1세는 직접 갑옷을 입고 병사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몸은 비록 연약한 여자이지만 마음과 용기는 영국 '와'의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 선장인 드레이크를 중용해 무적함대를 단번에 무력화시켰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그 어떤 남성보다도 강인했습니다. 그 힘으로 엘리자베스 1세는 세계 곳곳에 식민지 국가를 세우며,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